“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세요.”
“방금 밥 먹었다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걸까요…”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바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입니다. 요양보호사나 가족돌봄자 모두 겪는 이 답답함은 때로는 분노로 무력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감퇴만이 아닙니다. 인지 기능 저하로 인해 언어 처리, 감정 인식, 상황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뇌질환이기 때문에 ‘예전처럼 대화하듯’ 소통하는 것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치매 어르신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글에서는 실제 요양현장과 복지시설에서 검증된 치매 어르신과의 소통 기술 5가지를 자세히 알려드립니다.
1. 말보다 중요한 ‘눈 맞춤’과 ‘표정’
치매 어르신들은 말의 내용보다 상대방의 표정, 목소리 톤, 몸짓 등 비언어적 태도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는 언어를 이해하고 처리하는 인지 능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태도를 먼저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을 걸 때는 내용보다도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말투, 안정된 자세가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 말하기 전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안정감을 주세요.
-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어르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 팔짱을 끼거나 찡그린 얼굴은 방어적 태도로 받아들여집니다.
- 어르신이 불안해할 때는 말 없이 손을 가볍게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Tip :
“어르신, 제가 옆에 있어요.” 말보다 눈빛과 몸짓으로 먼저 이야기하세요.
2.천천히, 짧게, 한 번에 하나씩
치매 어르신은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복잡한 문장이나 길고 복합적인 설명을 이해하거나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르신, 약 드시고 나서 밥 먹고 산책도 하셔야 해요”와 같은 문장은 정보가 한꺼번에 너무 많아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르신은 전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을 느낄 수 있으며 기억에도 잘 남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을 짧고 천천히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올바른 방법 :
- “어르신, 이제 약 드실 시간이에요.”
- (약 드신 뒤) “이제 밥 드시러 가요.”
- 느리고 또렷한 발음으로 말합니다.
- 가능하면 손짓, 몸짓을 함께 사용해 주세요.
주의!
한꺼번에 많은 지시를 내리거나 재촉하는 말투는 혼란과 불안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3. 기억보다 ‘감정’을 먼저 읽어라
치매 어르신들은 기억력 저하로 인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쉽게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느꼈던 감정, 즉 기분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투나 다정한 태도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때 느꼈던 편안함이나 안정감은 오래 지속되는 것이죠. 반대로 화를 내거나 냉담하게 대하면 그 내용은 잊어도 불안하고 슬픈 감정은 계속 남을 수 있습니다. 결국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어떻게 말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 "아까 밥 드셨다니까요!" → 어르신은 기억 못 해요. 대신 기분만 상합니다.
- “밥 생각나셨어요? 잠깐 같이 확인해볼까요?” → 감정을 존중한 대화
- 또한 화가 났거나 슬퍼 보일때 '왜 화났는지' 따지기보다는 “기분이 좀 안 좋으세요?” “걱정되는 일 있으세요?”라고 감정을 알아주는 말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공감은 가장 강력한 치유입니다.
반복 질문엔 지치지 말고,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기
"우리 집 언제 가?"
"이저 누구야?"
"밥 먹었어?"
치매 어르신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우리는 답답한 마음에 무심코 “계속 말했잖아요!”라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에게는 그 질문이 정말 ‘처음 하는 질문’일 수 있습니다. 기억이 단기적으로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방금 들은 말이나 한 행동도 금세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반복되는 질문은 일부러가 아니라 인지 기능의 저하로 인해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의 기억과는 다르지만 어르신에게는 지금의 혼란과 궁금증이 실제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좋은 반응법:
- 같은 질문이 반복돼도 처음처럼 반응하세요.
- 가능한 짧고 확실한 대답을 반복하세요.
- 질문의 의도(감정)를 파악해보세요.
→ "우리 집 언제 가?"는 '불안감'을 표현한 말일 수 있습니다.
→ "누구야?"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진심은 반복해도 위로가 됩니다.
5. 대화보다 더 강력한 ‘함께 하기’
치매 어르신과의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보다 더 깊은 정서적 교감을 이끌어내는 것은 ‘행동을 통한 소통’입니다. 예를 들어 함께 천천히 산책을 하거나 조용히 손을 잡고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르신은 따뜻한 연결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함께 음악을 듣거나 식사 준비를 같이 하는 등의 일상적인 활동은 말없이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이런 소통 방식은 어르신에게 안정감과 존중받는 느낌을 주어 정서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 어르신이 좋아하는 옛날 노래를 함께 부르세요.
- 손등에 로션을 바르며 “따뜻하죠?”라고 말해보세요.
- 밥을 먹지 않으려 할 때 말로 설명하기보다 같이 식탁에 앉아보세요.
말로는 전해지지 않은 온기가 함께하는 행동을 통해 전해질 수 있습니다.
“말은 잊을 수 있어도 함께한 따뜻함은 기억에 남습니다.”
마무리하며 : "소통"은 기술이자 따뜻함입니다
치매 어르신과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거나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대화는 꼭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전해질 수 있습니다.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손짓, 환한 표정, 손을 잡는 스킨십처럼 비언어적인 표현은 어르신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특히 ‘공감’의 감정은 언어보다 더 깊게 마음에 닿는 소통의 힘을 가집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말이 아니라 함께하려는 진심입니다.
눈빛, 손짓, 표정, 스킨십, 그리고 '공감'이라는 감정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지금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의 마음까지 함께 닫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치매 어르신과의 소통은 때로는 답답하고 반복적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습니다. 한 번 더 미소 지어주고 한 번 더 기다려주며, 같은 질문에도 한 번 더 다정히 대답해주는 그 마음은 어르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말의 정확함보다 진심 어린 태도와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치매 어르신과 소통할 때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우셨나요?
경험을 댓글로 나눠주시면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